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·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(문단 편집) === 미국 여론 === 그 당시 미국인들은 일제의 기습 공격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. [[미국 독립 전쟁]] 이후에는 1812년 [[미영전쟁]] 이후 처음으로 [[진주만 공습]]으로 미 본토가 공격당한 것만으로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고 유럽 전선의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 세계적으로 종전 분위기가 강해진 상태에서 [[이오지마 전투]]와 [[오키나와 전투]]에서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국 국내에선 "일본 본토 상륙으로 큰 희생을 치르느니 해상 봉쇄를 실시해 '''그냥 다 굶겨 죽여버리자'''"는 여론도 해군을 중심으로 매우 강하게 대두되었다. 심지어 마침 추수철이 다가오고 있던 시점이라 일본의 모든 곡창지대에 제초제를 뿌려버리는 전략도 있었다. 이 가운데 해상 봉쇄는 항구에 기뢰 깔아두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. 더구나 [[선전포고]]도 없이 [[기습|이뤄졌던]] [[진주만 공습]] 때문에 [[미국인]]들의 일본에 대한 증오는 강력해서[* [[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|행정명령 9066호]]만 봐도 알 수 있고, [[윌리엄 홀시]] 재독은 [[과달카날]]에서 "Kill japs, kill japs, kill more japs!"를 외쳤다.] 히로시마에 대한 핵폭격 당시에도 더 치명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투하 전에 사이렌을 울려서 시민들이 하늘을 보게 하고서 터뜨려서 폭발 섬광으로 인한 [[실명]]을 최대한 유도해 인명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겠다고 하거나, 원자폭탄이 히로시마급 도시를 그대로 완파하지 못한다고 여겨 핵폭탄으로 소방 등의 도시 기능이 마비된 히로시마에 한 번 더 [[소이탄]] [[폭격]]을 감행해 다 태워 흔적도 남기지 말자는 각양각색의 의견도 올라왔다. 그리고 이러한 의견이 취소된 건 [[원자폭탄]] 피해가 소이탄에 묻히면 원자폭탄의 '''정치적 상징성'''이 줄어든다는 다소 기묘한 이유였다. 반대로 정치적 상징성만 빼면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. 즉 당시 미국 여론은 위에 인용한 키건의 표현대로 '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고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은' 생각에 가득한 상태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